함께하는 여행
시간이 찬찬하게 퇴적되는 곳
순천
전라남도에 아름다운 곳은 다양하게 있지만, 그중에서도 순천은 독특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낙안읍성과 드라마 촬영지에서는 그 옛날의 시간을 베어내어 보관한 듯한 느낌이 든다면, 순천만 습지와 국가정원은 조금 다르다.
순천만 국가정원에서는 각국의 문화별로 인간이 어떻게 자연을 각자의 환경에서 길들이려 했는지를 볼 수 있다.
순천만 습지에서는 자연이 인간을 그들의 일부로 받아들인채 요요하게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올 한해의 수고로움을 수확하는 가을, 순천은 내 마음속 시간의 퇴적을 바라보기 위해 갈 만한 여행지다.

sub_writer_deco김그린 여행작가

 

자연을 지키다,
순천만 국가정원과
순천만 습지
순천만 국가정원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기념할만한 장소다. 연안습지로는 처음으로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순천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지만 그 자체의 구조적인 아름다움도 눈에 담을 만하다. 동문으로 들어서면 순천의 지형을 그대로 축소한 언덕과 호수의 정경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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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2013년 4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열면서 생긴 각국의 정원도 생생하게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영국 빅토리아 양식의 정원이나 열대 수목이 식재되어 이국적인 분위기가 나는 태국 정원 등 12곳의 정원이 ‘세계전통정원’이라는 이름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렇게 순천만 국가정원을 한창 돌아다니다 보면 어렵잖게 ‘스카이큐브’를 보게 된다. 순천만 국가정원과 순천만 습지를 연결해주는 무인열차로 국가정원에서 5km가량 떨어진 습지를 가기에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수단이다. 약 10분가량의 국가정원 조망을 마친 뒤 ‘스카이큐브’에서 내리면 갈대들이 바람을 따라 서로 몸을 부딪치는 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
안타깝게도 많은 인기가 있는 ‘생태체험선’은 코로나19로 인해 임시중단되었다. 오롯하게 집중할 수 있는 것은 태양과 바람에 멈추지 않고 자그락거리는 갈대숲과 바다로 나아가는 꼬불꼬불하지만 멈추지 않는 물길뿐이다.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꼭 올라가겠다며 들르는 곳은 순천만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용산전망대’다. 저 멀리 강물이 선을 그리며 굽이쳐 나가는 모습이 해가 질 때면 실로 황금빛으로 물들어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만드는 일몰 맛집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정원과 순천만 습지는 2023년 새로운 도약을 노리고 있다. 2013년 이후 10년 만에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순천시에서 열리는 것이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테마정원과 함께 더 많은 사람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낼 그 날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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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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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시대를 담다,
순천드라마촬영장과
낙안읍성
보통 도시의 미관을 가꾸는 사람들 입장에서 달동네라는 것은 보다 더 깨끗하게 정비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이기 쉽다. 그러나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옛날의 생활상이 배어든 환경을 남겨두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순천드라마촬영장’은 지금은 사라진 1960년대부터 80년대 사이의 서울 관악구 봉천동 달동네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한 세트장이다. 시대별로 3개 마을, 200여 채의 건물이 지어져 있다. 아예 마을 하나씩을 통째로 재현한 만큼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도 그 옛 모습을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손꼽힌다. 그 시절의 복고풍 교복을 빌려 입고 돌아다니다 보면 절로 흥이 나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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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민속마을
한편 보다 실감 넘치는 옛 모습이라면 ‘낙안읍성’을 빼놓을 수 없다. 비록 시대 자체는 한참 전인 조선시대지만,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유적지가 아니라 아직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공간이라 그 생동감이 다르다. 시시때때로 전통음식 페스티벌, 판소리 경연대회, 정월대보름민속한마당 등 다채로운 행사를 열었지만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잠정 중단되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일 상설체험은 여전히 할 수 있어 ‘낙안읍성’을 찾는 사람들의 추억을 한층 알차게 채워주고 있다.
관아에서 쓰이던 놋그릇 닦기 체험이나 대장간 체험, 기념품 삼아 손수건을 가져갈 수 있는 천연염색 체험 등이 있어 옛 조선 시대의 생활상이 이와 비슷할 지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든다. 이 곳이 단순히 ‘낙안읍성’이라는 유적지의 이름이 아니라 민속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를 마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순천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편이라 대중교통으로 찾은 경우 버스 시간표를 미리 확인해 시간을 규모 있게 활용하는 것이 좋다.
역사가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는 곳,
송광사와 선암사
순천 여행에서 다소 넉넉하게 시간을 내 1박 2일로 여행하는 경우, ‘송광사’와 ‘선암사’를 모두 보고 갈 것인지 고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송광사’는 편백나무가 울창한 숲 속에서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한 16명의 국사와 수많은 고승을 배출한 것으로 이름이 높다. 신라 말에 창건되어 그 역사만으로도 한국불교의 승맥을 잇는 대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사 내에 거느린 암자나 승탑의 개수도 상당히 많은데, 그 중 한 암자는 법정스님이 생전 자주 다니셨던 ‘불일암’으로 고승을 배출하는 ‘송광사’의 전통이 아직 꿋꿋함을 보여주는 예시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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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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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송광사’가 대찰의 면모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면 ‘선암사’는 한층 아기자기한 맛을 보여주는 조그만 사찰이다. 다만 ‘선암사’까지 가는 길이 선경과 가깝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워 가는 길이 더욱 즐거운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지개다리인 ‘승선교’와 선녀들이 놀았다는 ‘강선루’ 등에 감탄하며 길을 올라오면 사계절 만발한 수목으로 둘러싸인 ‘선암사’가 나온다. 우리나라 천태종 불교의 뿌리인 만큼 규모는 작지 않지만 ‘성보박물관’을 비롯해 독특한 꾸밈새가 한층 눈에 박히는 곳이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송광사와 선암사를 이어주는 길을 따라 트레킹을 하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조계산의 동쪽과 서쪽에 하나씩 사찰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산행과 함께 특색 있는 두 개 절을 구경할 수도 있고, 가을 조계산의 아름다운 단풍도 한껏 마음속에 담아올 수 있다. 이름하여 천년불심길로 각 절의 주차장에서 출발해 다른 절의 주차장까지 도착하는데 약 9km의 거리를 걷게 된다. 스님들의 포행길인 만큼 차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가을의 절길을 걸어보자.